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웃집 토토로 (문단 편집) == 해석: [[반딧불이의 묘]]와의 관계 == 이웃집 토토로는 1988년에 [[반딧불이의 묘]]와 동시 개봉했다. 따라서 관객들은 두 작품을 연속해서 같이 봤는데 이것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의도적 설정이라는 관점이 있다. 출전은 [[오쓰카 에이지]],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북바이북, 2015, 83~85쪽. 어디까지나 애니메이션 연구가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왜냐하면 이웃집 토토로의 경우 실제작에 들어가기 전의 기획과 달리 만드는 과정에서 작품 내용이 크게 바뀌었고, 타카하타 감독이 바뀐 이웃집 토토로의 내용을 알고 그 [[안티테제]]를 노리고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반딧불의 묘는 원작 소설을 거의 있는 그대로 옮겨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웃집 토토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토토로》와 《반딧불의 묘》는 세트로 비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동시개봉 작품이거든요.(《이웃집 토토로》와 《반딧불의 묘》는 1988년에 동시개봉했다. 즉 관객이 극장에서 《이웃집 토토로》와 《반딧불의 묘》를 연속해서 같이 봤다는 의미이다.)비교해보자면 《반딧불의 묘》에서는 남매, 《토토로》에서는 자매가 등장하죠. 또 두 작품 모두 어머니가 병에 걸려 위독해집니다. 사츠키와 메이의 세계에서는 어머니가 완쾌합니다. 하지만 《반딧불의 묘》에서는 어머니가 안타깝게 죽게 되죠. 아버지도 《토토로》에서는 멀리 대학에 일하러 나갔지만 다시 돌아옵니다. 그런데 《반딧불의 묘》에서는 죽어버리죠. 또 사츠키와 메이는 동네아이들이 '귀신붙은 집'이라고 하는 집에 삽니다. 하지만 사실 귀신 붙은 집은 아니었죠. 《반딧불의 묘》에서는 두 남매가 살게 되는 작은 굴에 찾아온 동네아이들이 귀신이 산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모든 요소가 '판타지'인 《토토로》와 너무나도 '리얼'한 《반딧불의 묘》가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역전시킨 것처럼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br] >즉 미야자키 하야오의 《토토로》에 대한 비판, 혹은 비평이 《반딧불의 묘》입니다. 《토토로》만 놓고 보면 현실도피의 판타지일 뿐입니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현실도피의 판타지를 그린 것은 아닙니다. 동시개봉된 《반딧불의 묘》를 관객이 동시에 봄으로써 《토토로》의 주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뜻이죠. 그렇기에 세트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두 편을 동시개봉했던 것이고, 상영 순서도 《토토로》를 본 다음에 《반딧불의 묘》를 보여줬던 것입니다.[br] >《반딧불의 묘》는 《토토로》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토토로》는 그 '찬물'을 제대로 뒤집어쓸 수도 있도록, 판타지로 어린이들의 성장이나 가족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그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반딧불의 묘》와 《토토로》는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해지도록 만든 작품입니다. 《반딧불의 묘》는 '실제로는 이렇지 않느냐'라고 현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반딧불의 묘》에서는 두 남매에게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 토토로가 찾아와주지 않습니다. 두 남매를 찾아오는 것은 전투기뿐입니다. 하늘을 나는 것은 고양이버스가 아니라 폭격기입니다. 《토토로》의 사츠키와 메이는 고양이버스를 타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반딧불의 묘》에서 남매는 전차를 타고 자신들이 죽을 장소를 보러 갑니다. 《반딧불의 묘》에서는 오빠가 여동생의 머리를 빗겨줍니다. 《토토로》에서도 사츠키가 메이의 머리를 빗겨줍니다. 하지만 《토토로》에는 사츠키의 머리도 빗겨줄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정반대로 그려져 있지 않습니까. 모든 장소가 정반대입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요소가 대립된 채 존재합니다. 지브리는 일부러 그렇게 두 작품을 만든 겁니다.[br] >지브리가 무시무시한 이유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두 감독이 서로에게 비판자이기 때문입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프로듀서였던 다카하타 이사오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개봉된 직후에 비판했습니다. 항상 다카하타 이사오는 미야자키 작품을 비판하고, 또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비판에 응답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다카하타와 미야자키의 긴장 관계가 이어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긴장관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스즈키 토시오]]가 대립을 잘 조정해왔습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